정말 오랜만에 아무 일정 없이 쉬는 날, 집밥이 먹고 싶어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어요. 오전에는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고 오후에는 막걸리

집으로 출근하는 나날들. 매일 자정이 다 되어서 퇴근하니 요리를 할 마음의

여유가 나지 않더라고요. 아니, 최근에는 끼니를 챙길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 조금 일하다 보면 금세 출근 시간이 되고, 화장 커녕 씻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니 식사는 말할 것도 없죠. 그래서 이렇게 요리를 하고

있는 지금이 정말 오랜만에 보내는 나를 위한 시간이자 힐링 타임입니다.

저는 저 자신에 대한 잣대가 꽤 엄격해서 좀처럼 스스로를 잘 인정하진

않는데요. 그런 제가 봐도 정말 분투하고 있는 요즘, 한편으로는 마음이

답답한 게, 제 인생이 정말 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늘어나는 건 짐만이 아니더라고요.  내 몸 한 덩이 건사하는 데 드는 돈

이더라고요. 아무리 아껴도 월세 관리비며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고정지출은 줄어들지 않는데, 정신없이 서빙을 하고 난 다음 날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에 눈을 뜨고 설거지를

하며 건조해진 손이 찢어져도 그만둘

수 없는 제 자신을 보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방황하고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걸 알지만, 능력 있는 직장에 다니면서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지인들도 이미 여러 방면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데, 10년

전 신입 때 받은 월급보다도 못한 돈을

벌면서 성과도 내지 못하는 현실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

막막하고, 이렇게 꼬여버린 제 인생이

정말 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다 문득 회사 다닐 때는

회피하며 업무와 남들을 탓하던 제가, 끈기도

없고 포기도 빠른 제가, 과가 있든 없든 포기하지 않고 어쨌든 스스로

내린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퇴사라는 선택지를 선택하고 회사라는 울타리와 안정적인

월급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방법도

모르면서 어떻게든 되게 만들려고

애쓰는 제 모습이 좀 짠하기도 하면서 오히려 기특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회피하고 쉬운 길을

택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나라는 사람을 직면하는 순간

뿌옇기만 했던 앞날에 안개가 조금

걷히는 느낌이었습니다. 29kg, 몸보다 더 큰

10kg짜리 배낭을 메고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첫날,  동이 틀 때쯤

출발해 산을 하나 넘고 26km 걸어 오후 4시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거의 마지막으로 도착해

얼마 남지 않은 침대 한 칸을 겨우 배정받았을 때 생각했습니다. 남은

725km, 더 걸을 수 있을까? 26km, 거의 꼴찌로 들어온 저에게 725km는

엄청난 숫자, 불가능한 거리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제게는 완주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매일 조금씩 걷는 것뿐이었습니다. 힘들다 투덜대는 대신

예쁜 풍경을 눈에 담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서로 응원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며 내 선택을 즐기는

것을 선택했어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이 보여, 31번째 되는 날

750km 완주했고, 3일 동안 100km 더 걸어 스페인의 서쪽

끝까지 총 850km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막막했던

목표였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걷다 보니

어느새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되었고, 결국 목표 이상으로 얻는 경험이

저에게는 이미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가 가능했던 건

그 길에서 함께한 사람들 덕분인데요.

주위를 둘러보니 지금도 저에게는 힘이

되어주는 존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공감해주고,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주는 친구, 매일

걱정만 끼치는 딸이 혹여라도 잘못

챙겨 먹을까 봐 좋아하는 마른 반찬

장조림 잔뜩 해서 보내주는 엄마, 지금은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자고 지원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주는 아빠, 그 밖에도 잠재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함께

고민을 나누고 격려해 주는 지인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항상 댓글로 진심 어린 응원을 전해주시는 구독자

분들까지 저는 정말 과분하게도 많은

분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비록 답답하고 답이 없어

보이는 현재지만,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동력 삼아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언제가 되었든

결국 끝날 거예요. 취업이든 시험이든 무엇이라도 끝은

있어요. 답이 없어 보여도 분명 끝은 있으니, 스스로를 믿고 지금 할 수

있는 것 하나씩 해보자고요. 혹시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신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그 응원

제가 마음껏 해드릴게요. 오래 가려면 건강이 우선인

거 아시죠? 일단 든든하게 밥부터 챙겨

먹고 또 같이 힘내 봅시다. 그럼

사는게 너무 막막할 때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알게된 것 | 30대 백수

퇴사한 30대,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사는게 너무 막막할 때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알게된 것 | 30대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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