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미국은 골드러시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금을

찾아 서부로 몰려들었고, 그중 몇몇은

막대한 부를 손에 넣기도 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작 가장 큰돈을 번 사람들은 금을 캐던

이들이 아니라 곡괭이와 삽을 팔던

사람들이었다고.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골드

러시를 목격하고 있다. AI 시대, 사람들은 AI라는 새로운 금맥을 찾아

몰려들었다. AI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기술들이 매일같이 발굴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역시 가장 큰돈을 벌고 있는 건 금을 캐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AI 시대에서 가장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반도체다. 반도체는 이름 그대로 전기를 조금 통하게 하는 물질이다. 완전히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도 아니고,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도 아닌, 그

중간에 위치한 독특한 상태의 물질이다.

물질의 가장 큰 강점은 전류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전압을 가하면 전기가 흐르고, 전압을 차단하면

전기가 멈춘다. 마치 우리가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전기를

켜고 끌 수 있는 아주 작은 스위치가 되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반도체는

정보를 0과 1로 변환하고 저장하며 복잡한 연산을 처리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컴퓨터 그리고 AI

알고리즘까지 모든 기술의 기본이

바로 이 작은 스위치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반도체가 단순히 전기를 켜고

끄는 역할만 했다면 지금의 AI 시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도체

안에는 이 모든 기술을 가능하게 만든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트랜지스터.

고작 손톱 정도 크기의 반도체 칩 안에 수억 개, 아니 무려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빽빽하게 들어가 있다.

트랜지스터는 마치 수도꼭지처럼 전기의

흐름을 아주 미세하게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트랜지스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연산 속도는 빨라지고 에너지 효율은

급격히 높아진다. 한 번의 연산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확연히 줄어들기

얼마나 작은 트랜지스터를 얼마나 많이

칩 위에 올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단위는 이미 나노미터로 진입한 상태다. 일명 나노미터 전쟁. 지난

10년간 이 전쟁의 중심에는 파운드리라 불리는 반도체 제조 기업들이 있었다.

2014년 TSMC가 20nm 공정 상용화에 성공하며 기술 경쟁의 선두로

나섰다. 이후 16nm, 10nm를 거쳐 2018년 7nm, 2020년 5nm,

그리고 전쟁터는 이제 3nm로 옮겨졌다.

대표적인 기업인 TSMC, 삼성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트랜지스터의

집적도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1nm는 머리카락 두께의 약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은 크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포토리소그래피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실리콘 웨이퍼 위에

트랜지스터 구조를 새겨 넣는 방식이다.

레이저 같은 빛을 이용해 실리콘 위에

정밀한 패턴을 새기는 과정에서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필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극한으로

줄이다 보니 트랜지스터가 결국 양자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양자

터널링이다. 양자 터널링은 전자가

에너지가 부족한데도 장애물을 뚫고

지나가 버리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벽을 부수거나 넘지 않고도

벽을 통과해 버리는 것과 같다. 말도 안 되는 거 같지만 양자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전자는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장벽을 넘어설

확률이 실제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즉, 트랜지스터가 너무 작아지면 전자가

원래 가야 할 길을 벗어나 흐르지 말아야 할 곳으로 새어 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스위치가 꺼져 있어도 전류가 흐르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반도체가 나노 단위로 진입한 순간부터 예정된

숙명이자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재밌지 않은가? 우리와 이렇게 가까이 접하고 있는 곳에서 이미 양자 역학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삼성전자는 양자 터널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nm 공정부터 기존의

핀펫 방식 대신 게이트 올 어라운드 방식을 새롭게 도입했다. 게이트 올

어라운드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을

사방에 감싸는 구조를 말한다. 마치 터널을 만들어 전류가 새어나가는 걸

차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양자 터널링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만, 공정의

난이도가 크게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은 현재 수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TSMC 3nm는

트랜지스터의 전류 채널을 면에서만 감싸는 구조인 기존 핀펫 기술의

최적화에 집중하며 안정적인 수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

나노미터부터는 핀펫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해 게이트 올 어라운드 방식을 채택할 예정이다. 결국

반도체 전쟁은 양자 영역에서의 치열한

싸움으로 진입하고 있다. 1800년대 골드러시가 서부 개척과 새로운 산업을

열었던 것처럼 21세기 혁신은 우리

손안에 있는 작은 칩에서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양자의 영역에 진입한 AI 반도체 기술

결국, 양자의 영역에 진입한 AI 반도체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