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사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눈길을 가장 끌었던 것, 그리고

가장 한심했던 것은 그 얼빠진 라카이가 아니라, 저에게는 이 문구였습니다. ‘소멸할 지연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이었습니다. 외국의 어떤 문구를

변형해서 쓰는 거라고 하는데, 뭐 알

필요도 없습니다. 알 가치도 없고요. ‘소멸할 지연정, 개방하지 않는다.’ 마치

망해가는 조선의 산골 어딘가에서

몰락한 양반이 무너져 가는 초가집

냉골 방에 앉아서, ‘반상의 법도가 지켜진

한데 어찌 오랑캐 문물을 사대부가

사용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외칠 것 같은 그런

갑갑하고 치졸한 슬로건입니다. 천지를

모르고 눈만 가리고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여대라는 것의 존재는 여러 가지 이유와 여러 의미가 있을 겁니다.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뭐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부하기 위해서는 '여대야동' 이런 말에는 딱히 동의를 못

하겠고, 무슨 학문적 성과를 자기들이

그리도 추구한다는 건지 모르겠고요. 그런데 어쨌든 좋습니다. 그러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명문대라고 칭할 정도의

레벨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세상은

변하고 있고, 학생 수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러면 학교의 발전

방안, 발전은 못하더라도 생존은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되는 게 당연합니다. 지금이 시대, 근데 지금이

상황이 처지에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저 개판도 극히 일부 어리석은

자들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대다수 동덕여대

학생들은 동의하거나 가담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요. 오히려 지금 동덕여대

학생들이 해야 하는 말은, 학교보다도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해야 하는 말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개방할지언정 소멸하지 않는다

이게 맞는 것 아닐까요? 레디컬 페미니즘 머시기

자기들의 행동을 지적받으면 꼭 하는 말이 뭐냐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필요 없다'는 겁니다.

내 행동에는 네 동의나 네 조언이 필요 없다.

나는 내 멋대로 그냥 하겠다. 이런 얘기가 되는 거죠. 남자들한테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여자들이 반발을 해도 똑같이 반응해요. '오빠가 그렇게 가르쳤냐?', '오빠가 그러라고 시켰냐?'

그러면서 그 반대한 여성들을 흉자라고 부릅니다. 남자를 흉내 내는 여자라고.

이것은 '저 소멸하다' 얘기와 사실 같은 맥락이에요.

확장성? 더 큰 세력을 모으고 더 큰 힘을 얻고 더 큰 동의, 더 큰 참여를 이끌어내고 양지로 걸어 나오는 것보다

지들끼리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앉아서 '내가 옳아, 내가 맞아' 하면서 세상을 저주하면서 사는 거,

남들은 틀렸어, 우리만 옳아, 우리끼리만 모여 있으면 돼 하는 게 더 좋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있으면 거기서 생산되는 것은 오직 피해밖에 없다.

의식 분자를 주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역사

속의 진짜 페미니스트 언니를 이야기해 주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개방할지언정 소멸하지 않았던 사람, 이탈리아 최초의

여자 변호사 리디아 포에의 이야기입니다. 리디아 포에는 1800년대

말, 여성의 고등 교육 자체가 흔치

않았던 시절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교육을 받았고요, 학교에

다니면서 영어, 독어, 프랑스어 교사 자격을 모두 취득합니다. 그리고 의대에

진학했다가 중도에 자퇴를 하고 나와서

다시 법대를 들어가요. 리디아 포에는 사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여성

참정권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법대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2년간 법원에서 법무 연수를 받고 변호사 시험을 쳐서

아주 높은 성적으로 당당히 통과를

해요. 그리고 변호사 협회에 변호사로 등록하겠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튜린

변호사 협회는 여자가 변호사로 등록 신청을 한 것이 처음이라서 위원회

전체가 등록을 시킬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를 두고 투표를 하는데 남녀

차별이 심했던 시절이지만 공식적으로 법은 차별은 없다고 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원회에서는 일단 통과가 됩니다. 여자가 등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 협회의 보드 멤버 중 두 명이 항의의 표시로 사임을 할

정도로 논란이 됐던 사건이에요. 그러나

리디아 포는 굽히지 않고 계속 밀어붙여서 결국 변호사 자격을

얻어냅니다. 그게 1883년 8월의 일이에요. 그런데

이탈리아의 법무부 장관이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왜 여자를 등록시켰냐는 이유로 3개월 만에 11월에

리디아 포는 판결로 변호사 등록이 취소되고 자격이 말소됩니다. 당시에 이

결정을 내린 법원 판결문은 지금 시대에 읽으면 법원의 공식 판결

문이라고 하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숨 막히게 차별적입니다. 이걸 자세히

읽어 드리면 이걸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노딱을 먹을 수도 있을 정도라서 간단히 요약해서 적당히 단어를

교체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조의 직무,

변호사의 직위는 늘 오직 남성의

일이었고, 여성은 끼어들 수 없었습니다.

여성이 법정에 나오는 것, 대중

앞에서 논쟁하는 것, 조신하지 못하게 열띤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쳐다보기

힘든 추한 일이며, 그 과정에서 차분하게 만들어진 여성의 본성이 자칫 쉽게

동요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과연

여성에게 주어진 본연의 역할이 맞는지, 그것을 성공 또는 성장이라

부를 수 있는지 숙고해야 합니다. 여성은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은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에 걸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탈리아의 27개 중

23개 언론이 리디아를 지지했고, 단 4

개만이 법원의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이 이미 내려진

이상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리디아는 포기하기는커녕 개업한

변호사였던 자신의 오빠, 지오바니 엔리코,

동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법정에는 못 나가지만 계속 변호사로 활동한 거예요.

당시의 기록이 많이 전해지지는 않는데, 추정컨대 여러 남자 변호사들을

고용해서 부리고 자기 대신 법정에 내보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리디아는 여성과 청소년 사건을

변호하는 활동을 활발히 했어요. 국제

교정 회의를 30여 년간 주도하기도 했고요. 재소자의 인권, 미성년 범죄자의

인권 분야에서 변호사로서 싸웠습니다. 미성년 법정을 분리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감옥 생활을

처벌이 아닌 교화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활동들, 교육 프로그램, 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도 힘썼습니다. 이탈리아 국립 여성 협회의 창립 멤버

였고요. 정치권의 압력을 행사해서 미성년자의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여러

법안을 실제로 통과시킨 주역입니다. 국가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시스템이

도장만 찍어 주지 않았을 뿐이지, 리디아 포는 평생을 변호사로 살아간

거예요. 그리고 1920년 변호사 자격이 취소된 지

37년 만에, 리디아 포는 65세에 드디어 국가로부터 변호사 자격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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