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의 죽음 광해가 왕위에 오른 지 일주일 만에 유경은 사직을 청합니다. 이미 게임이 끝났으니 목숨이라도 보존하려고 스스로 몸을 낮춘 건데요.

하지만 광해는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냥 도망칠 생각 말고 죄값을 받고 가라는 거죠.

이제 반격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사를 필두로 온 관료가 유경을 탄핵하여 영의정 유영경, 본래부터 심성이 흉악한 사람으로 오래도록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제멋대로 권세를 휘둘렀으며 간신이라고 지목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가 정승의 자리에 버티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사옵니다.

유영경 관직을 삭탈시키고 도성 밖으로 내쫓으라고요.

재밌는 점은 유경과 뜻을 함께 했던 소북 인사들도 다 같이 유경을 탄핵했다는 건데요.

판이 뒤집혔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손절한 거죠.

이들은 같은 소북이라도 유경과 자기는 뜻이 다르다면서 유영경 일당은 탁한 소북, 즉 소인배이고 자기네는 유경과 뜻을 달리하는 청소기라고 주장했습니다.

광해는 처음에는 선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를 함부로 벌줄 순 없다며 유경을 처벌하기 꺼렸습니다.

그러나 유경이 영창대군을 밀고 있었단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광해가 왕위에 오른 이상 어차피 목이 달아나는 건 시간 문제였는데요.

그렇다고 바로 죽이면 체면이 안 서니 일단 자기는 인자한 왕인 양 용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거죠.

자, 그런데 신하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 정도도 눈치 못 챌 리가요.

신하들은 계속해서 유영경 처벌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못 이기는 척 조금씩 처벌 수위를 높여가는 광해.

처음엔 영정에서 직하, 그다음엔 파직을 하더니 그다음엔 삭탈관직하고 문의 송출, 그러니까 아예 벼슬아치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고 한양 밖으로 내쫓아 버립니다.

그다음엔 유배를 보내더니 결국 마지막엔 자결을 명하는데, 영정 이원익이 온 관료와 함께 다 같이 나아와 유경의 죄를 요구 광해가 말합니다.

유경은 선왕의 신하였던지라 내가 차마 무거운 벌을 내리지 않으려 했다.

허나 경들이 이리 다 같이 나아와 여러 날 동안이나 처벌을 요구하니 나도 이젠 더 이상 거절하기가 어렵구나.

유경을 스스로 자결케 하여 백성들의 노여움에 사죄토록 하라.

그렇게 유경은 스스로 목을 매 자결합니다.

임군의 옥사. 한편 광해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신하들이 처벌을 요구한 인물이 한 명 더 있었으니 바로 광해의 형 이군, 이지.

이지는 오랫동안 다른 마음을 품고서 사사로이 무기를 모으고 군사를 양성하였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선왕께서 병환에 드실 때부터 역적과 무사들을 끌어모아 불순한 짓을 도모하였으며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고 있사옵니다.

속히 이진을 유배 보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소서.

하지만 광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형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후 전개로 보아 사실 광해도 이미 이군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던 듯해요.

앞서 유영경 때도 그렇지만 그냥 체면 치례한 거죠.

특히나 이군은 광해에게 하나뿐인 동복 형제인데, 행실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고, 근데 왕 되자마자 직접 죽이겠다고 나서는 건 좀 모양새가 안 살잖아요.

그래서 유영경 때처럼 신하들이 암묵적으로 합을 맞춰서 신하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처벌을 내리려 했던 것 같아요.

자, 그런데 여기서 뜻밖에 돌발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군이 여장을 하고 도망쳐 버리는데요. 그러더니 또 얼마 못 가서 바로 붙잡혀 버려요.

자, 이것 봐요. 이게 얼마나 멍청한 행동입니까?

임해군이 여에 망나니 짓을 한 게 자기는 광해의 왕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이었다?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죠.

여기서 도망을 친다는 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임해군이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 줬으니 광해 입장에선 이제 거칠 게 전혀 없어졌는데요.

사헌부는 곧장 이이첨을 유배해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광해는 이미 임해군의 반역 모의가 진짜인 걸로 못 박아 버리고 이를 수락하는데 그렇게 본격적으로 옥사가 시작되면서 관련자들이 줄줄이 끌려 나왔죠.

이들은 반역 혐의를 부인했지만 광해는 직접 옥사를 주관하며 가혹한 문초를 가합니다.

그러자 호된 고문을 견디다 못한 노비 한 명이 마당에 무기를 숨겼다고요.

근데 막상 가서 파 보니까 원래 무기가 하나도 안 나옵니다.

그러자 광해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벌써 다 파내지 않았겠느냐. 아니, 그렇게 따지면 증거를 뭐 하러 찾습니까?

이미 다 숨겼을 텐데요. 증거가 없어도 죄를 확정할 거면 증거를 찾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 건데요?

이러한 행동 때문에 광해는 애초부터 임해군을 죽일 생각이었을 거라 추측하는 거예요.

그러자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과 같은 대신들이 나서 론을 냅니다.

아무리 그래도 형인데, 왕으로서 100번 양보해 목숨이라도 살려주는 게 어떠냐는 건데요.

반대로 정은 기어코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적의 수괴, 임해군을 반드시 죽여야 하옵니다.

전 말씀드렸듯이 임해군이 살아있을 때 명나라에서 세자 책봉을 승인해주지 않으려 했다고 했죠.

결국 광해는 끝내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왕위에 올랐어요.

근데 광해가 즉위 사실을 알리는 사신을 보내자 명나라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첫째, 임해군은 어디 가고 어째서 둘째인 광해가 왕위에 오른 건가?

당황한 선조는 얼떨결에 거짓말을 둘러대고 마는데요.

임해군이 병이 있어서 직접 양보를 했습니다. 그러자 굳이 이를 확인하겠다고 사신을 파견하는 명나라.

소식을 들은 조선에선 비상 사태가 열렸죠.

곤경에 처한 신하들은 임해군을 불러다가 거짓말을 하라고 시킵니다.

내가 일찍 왜적에게 붙잡힌 적이 있는데, 그때 정신을 잃고 못된 행동을 많이 하였어.

또한 지금은 중풍에 걸려서 손발을 움직일 수도 없구려.

이때 조선에선 한창 임해군의 영모 사건이 이슈여서 사신은 이와 관련된 것도 묻습니다.

반역을 도모하다 죄를 받은 것도 사실이요?

그건 사실이 아니요. 내가 병으로 인하여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이 노비들이 이상한 짓을 버린 듯하 나는 전혀 몰랐어.

조선 관료는 해군에게 그냥 영모 혐의도 인정하라고 했는데, 임해군이 죽어도 그건 인정 못하겠다고 버티자 그럼 노비 핑계를 대라고 일러서 임해군이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근데 사신이 바보도 아니고 이걸 둔치 모리가 돌아가는 꼴 딱 보아하니 대충 눈치 챘겠죠.

명나라 사신은 나름대로 정보를 캐물어 상황을 대충 파악했습니다.

이대로 명나라 사신을 돌려보내면 명에 가서 진실을 말할 테고 그럼 광해의 입장이 굉장히 난처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결국 광해는 입막음을 대가로 명나라 사신에게 엄청난 양의 은을 뇌물로 줍니다.

저기, 여기 약소한 선물입니다. 명에 돌아가셔서 말씀 좀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 알 만한 사람들끼리 다 눈치껏 하는 거지. 또 뭘 또 이런 것까지 주시고 그럽니까.

뭐, 그래도 일단 성이니 감사히 받긴 하겠습니다.

한편 이를 계기로 나라에는 '조선에 가면 뇌물로 은을 준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그래서 명나라 사신이 올 때마다 엄청난 양의 은을 요구해 대기 시작하는데요.

물론 이게 꼭 이 일만은 아니기도 한 게 명나라가 조선에서 은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왔다가입니다.

원래 조선은 은 생산을 안 했어요. 생산하면 뭐 합니까?

명나라에 싹 다 갖다 바쳐야 되는 걸요. 그래서 그 혁신적인 연은 제조법도 갖다 버리고, 아니 우리는 없다고 하면서 버팅기고 있었는데.

원래 임진왜란 때 명군이 와서 보니까 조선에서 은이 나네.

명나라 입장에선 노다지를 캔 거나 다름없죠.

그래서 이때부터 시작해서 명나라 사신은 조선에 올 때마다 어마어마한...

그래서 이때부터 시작해서 명나라 사시는 조선에 올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은을 뇌물로 챙겨 갑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조선의 정이 파탄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죠.

임해군의 죽음. 이렇게 1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어쨌든 잘 마무리됐으니 다시 본론으로 와야겠죠.

광해군은 고된 추국을 시작합니다.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결여 인물이 사망했고 또 많은 이들이 유배에 처하고 말았는데요.

하지만 아직 목표에 다다르지 않으니 여기서 끝낼 수 없죠.

신하들은 계속해서 이군의 처형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들어줄 수 없느니라.

광해는 광해군 6월 3일, 임해군이 유배지에서 갑자기 의문사로 죽어 버립니다.

이때는 그냥 병사로 마무리됐지만 훗날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폐위된 다음에 한 노비를 통해 진실을 알게 돼요.

임해군이 유배지에 있을 때 집 안에다 음식을 넣어 주던 노비가 있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뒤집힌 다음에 임해군의 가족이 이 노비를 불러다 진실을 물었어요.

그러자 노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임해군을 지키는 수장으로 이정표라는 자가 있는데 그 자가 임해군에게 강제로 독을 먹이려 했습니다.

근데 임해군이 거절하자 새끼줄로 목 졸라 죽여버렸습니다.

이 얘기가 나름 신빙성이 있는 게 실제로 임해군이 죽었을 때 이정표는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

이상하지 않나요? 애초에 이정표의 역할은 임해군을 지키는 거였어요.

근데 임해군이 죽었다는 건 이정표가 역할을 못 한 거잖아요.

그럼 이정표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았단 말이죠.

그래서 이 증언은 꽤 신빙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근데 또 그렇다고 완전히 믿을 수만은 없는 게 이게 인조반정 이후에 나온 증언이잖아요.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이 광해군의 포악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반정의 제1 명분이 살제 광해는 제 어미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 놈이다라는 것이었으니 광해는 제 하나뿐인 친형인 임해군도 죽인 놈 아니냐라는 타이틀을 씌우고 싶었겠죠.

게다가 이군 기에는 이 뒤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부인 허 씨가 관을 열고 보니 피부가 살아 있을 때와 같았는데, 그 목에 아직 새끼줄을 감았던 붉은 흔적이 있었다.

아니, 이군 죽은 게 1623년 인조반정이 1623년이니까 이미 죽은 지 14년이 지났단 말이에요.

광해가 왕위에 오르자 마자 죽인 사람들 [광해군-4]

우리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를 전공하지 않았고 단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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