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정에 간다. 아버지의 예순아홉 번째 생신 파티가 있기 때문인데

미라클 모닝과 함께 아이 둘 챙기고

남편까지 챙기느라 메이크업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메이크오버를 시작해 본다. 잘 안

씻었나? 얼굴에 뭐가 또 엄청 났다.

장비 없는 유튜버 초보의 생얼로 영상

찍고 하니 짝짝이. 내 콧구멍이 오랫동안 나올 예정이라 먼저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 일단 그까이꺼

대충 팩트 두들겨주고 애교살 장착

해서 다섯 살 어려 보이기를 시도. 터널도

상관없다. 대충 아, 여기가 애교다 싶은

데다가 그냥 찍어 발라준다. 다음은 컨실러로 기미 가리기. 뭐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그냥 다 발라 버리면 된다. 다음은 리퀴드 브러시로 눈썹 그리기.

이것도 대충 그냥 갈매기처럼 그려주고

블러셔 찾아다가 얼굴에 그림 그리기. 나는 쿨톤이라 골드를 주로 쓴다.

그러니까 뭐 쿨리웜이 이것도 그냥 대충

대충 그린다는 뜻이다. 어쩐지 섀도우가

과하다 했는데 터널이 엄청 길었네.

그리고 입술을 대충 붕어 입술처럼 음파

음파. 이제 포인트 섀도로 눈 뒤 팀 시술. 이번에는 초고난도 기술 들어갑니다.

김홍도 선생님은 그 옛날 지도를 그리셨고, 난 달리는 차 안에서

아이라이너를 그린다. 이때만큼은 내 팔이 오지게 흔들리고 손 떨림 방지

기술을 장착해 본다. 갑분 외모 망했다 싶다. 초근접 촬영.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10초로 넘기기를

권해드린다. 달리는 차에서 뷰러, 기

눈썹 대신 내 살점을 뜯어먹었던 수많은

날들을 지나서 드디어 눈 감고도 뷰러질을 할 수가 있다! 이 마스카라 인생

마스카라 컬링 한 번, 볼륨 한 번. 마지막 브러시로 연지 찍어주면 끝! 모

계에서 인간계로 변신했다! 엄마 아빠

가기 전에 막간 동물 만지기 도전! 딱딱한 게 내 발

뒤통수 치는 느낌입니다. 여긴 규모가

작은 만큼 게임 같은 걸 많이 하는데, 먹이를 다 주고 나면 이렇게 게임을

해서 돈을 더 받아갈 수 있다. 귀여운 돼지 등장! 돼지 밥주기를, 아니 밥 던지기를

해본다. 멍멍이가 좋아진 우리 둘째!

한 번 핥아주니까 너무 좋아 가지고 그냥 둘째가 너무 좋아해서

남편이 찍은 오늘의 시골 할머니

스타일. 정이 머니꽃! 자, 이제 집으로 갈까? 강아지랑 노는 둘째.

아이고, 누굴 닮았는지 애교가 철철철

넘친다. 딸 안 나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순간. 먹방과 함께 찍어본다.

지금은 내 유튜브에 대해서 논쟁 중.

자꾸 내 채널에 숟가락 얹는 남편!

다음 주제는 기저기 떼기. 29개월 둘째가 최근에 기저기를 떼서 그게

화제다. 근데 기저기만 뗐지, 실제로 화석을 보고만 말았다. 결국

너무 빨리 떼서 실패를 맛보고 있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유치원에서 한 번도 큰 볼일을 안 보는 우리 첫째 얘기. 그런데 알고 보니까

부전자전이라는 대화로 급전환. 호텔 가도 맨날 아니, 1층에서 볼일 보는

신랑. 모두가 신기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결혼 5년 차에 방귀 뀌는지

안 뀌는지. 근데 중요한 건요, 둘째 낳고 나서는 조절이 잘 안 된다는 거.

째 그의 상. 우리 할아버지 살아있는 중이죠. 혼돈의 대화가 끝나고 본격

생일 준비한다. 가 너무 힘들다. 우리 꼬맹이들은 몸으로 생일 선물 푼다.

우리 둘째가 팩트폭행으로 "아빠, 어제 예수를

불태우는 삼촌까지! 야, 찍어줘!" 하고

파티는 마무리. 다행히 눈이 내린 날인데, 다음 날

아버지 항암 일정이 있어서 집에 가는 중이다. 아빠 항암 전날에는 항상 친정에

내려가서 그다음 날 아침 오전까지 병원에 같이 간다. 아빠가 올 때 사과

하나 사라고 해서 단감에, 귤에, 고기에

기타 등등 장보고 가는 중이다. 손이 무겁다. 그래서 행복하다. 아버지랑 같이

함께 앉아서 TV 보기. 아빠가 아프시고 나서 바뀐 가장 큰 변화는

삶에 있어서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는 거다. 아들이

할 감 무엇보다 이 순간 아빠가 내 옆에

있어서 참 감사하다. 그저 앉아서 같이

귤까 먹는 순간도 참 고맙다. 베트남의

까오방이란 곳이 TV에 나왔다. 몸이 아파서 대리만족으로 여행 프로 많이

본다는 아빠. 우리 가족이 여행 가려고

모아온 돈, 또는 아빠 첫 병원 입원실 때

몽땅 들였고, 그걸 받으실 때도 아빠는

미안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저 아빠가 낫으면 여행 가기로 약속하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날이 부디 빨리

오기만 해. 날이 밝았는데 예쁜 쓰레기가

차 위에 가득하네. 대충 우산으로 조사 본다. 오지게도 많이 왔네. 천눈 로망

다 어디 갔냐고. 아버지의 병명을 알고

난 이후 우리 가족은 감사한 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걱정도

늘었다. 아버지는 폴피리 녹스라는 항암약을 총 12회까지 맞으셨다.

8회차 시상에 원부인 쪽 종양이 줄어서 효과가 좋고 그래서

약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이어왔다. 이날은 12회까지 몸 상태를 차랑

비교하는 날. 사실 그전에 좋은 소식에 가족 모두 들떴었는데, 왠지 아빠는

그 이후 많이 몸이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서 긴장됐던 이날 나는 불현듯

생각이 난 거다. 병원에 오기 전날 아빠는 잠들기 전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일은 이제 항암 안 받아도 된다. 이 소리 꼭 듣고 싶다고." 야속하게도

12차 이후의 아빠 상태는 전보다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고, 그 짧은

순간에 난 아빠의 그 말이 떠올랐다.

아빠가 실망했을까? 근데 정신 차려야지.

아, 진짜는 지금부터다. 그렇게 아빠는

13회차부터 3회차 간격으로 총 아홉 번, 한 사이클인 새로운

항암약을 맡기로 했다. 힘내자! 으쌰

으쌰! 기운 없는 티 내면 안 되니까 가볍게 몸무게를 재본다.

과체중. 결말. 조용히 혈압 재는 우리

아빠, 나도 해볼까 싶다. 저혈압 결말...

최저혈압이 80이 안 된다니! 난 자주 앵그리버드라 고혈압이라고 생각했는데, 경기도 오산이었다.

아버지가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낙담하실까 봐 계속 말을 붙였다.

항암제 개수가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서 맞는 시간이 줄었으니 얼마나 좋냐는, 기적의 논리를 펼쳐본다.

아빠, 힘내자! 아휴, 다 잘 될 거야.

내가 출근하는 날에도 아빠 병원에 오는 이유는, 아버지 예약 및 다음 일정을 확실하게 해놓기 위해서다.

먼 길 뭐 하러 오냐고 매번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막상 오면 듬직하다.

아빠, 아우… 내가 그만 가야지. 이제 출근해야 해.

친정집에서 회사까지는 880km 거리다. 눈도 왔으니까 평소보다 일찍 움직여 본다.

회사로 향하는 길, 가만히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 봤다.

췌장암 4기 아빠에게 전하는 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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