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2년, 당시 영국 큐 왕립식물원에

균류학자였던 해리 에반스는 태국의 한

열대우림에서 기이한 모습을 한 개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나뭇잎 뒷면에 거꾸로

매달린 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 쪽에서 곰팡이의 균사체가 길게 자라나고

있었죠. 사실 곤충을 숙주로 삼아 번식하는

곰팡이들은 이미 워낙 많이 알려져 있었던 터라, 이게 그다지

대단한 발견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 곰팡이는 포식성 동충하초 속의

일종으로 분류됐고, 2000년대 들어서 보다 자세히

연구가 되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2009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곤충학자인

데이비드 휴스 박사는 이 기생 곰팡이의

독특한 생활사를 발견하게 되죠. 바로

개미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사실이었는데요.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 조종 방식의 정교함이었습니다. 이들이 숙주로 삼는 곤충은 태국에 서식하는 목수개미로,

개미들은 나무의 구멍을 뚫고 집을 짓고 살아가죠.

그런데 이 곰팡이에 감염된 녀석들은

무리에서 이탈해 나무 위에서 내려오고, 높이가 낮은 풀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정확히 바닥에서 25cm 높이의 나뭇잎에 거꾸로 매달린 채

자리를 잡죠.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잎맥을 꽉 문 채 서서히 죽음을 기다립니다.

얼마나 강하게 물었으면 잎맥에 이렇게

선명한 턱 자국이 남을 정도인데요.

휴스 박사는 2011년 진행한 추가 연구에서

동충하초의 균사체가 이들의 턱 근육에

침투하고, 이 근육을 수축시켜 꽉

다물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죠.

여하튼 이렇게 개미를 장악한 동충하초의 균사체는 약 4에서 10일

동안 개미의 행동을 조종합니다.

동안 개미의 몸 전체로 퍼지고, 자실체는 머리를 뚫고 나와 길게

자라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놀라운 사실

하나는 개미가 매달리는 나뭇잎의 높이는 거의 예외 없이 지면에서

25cm였고, 이때 이 부근의 습도는 항상 94~95%

온도는 20~30도였다는 겁니다. 휴스 박사는 이 지점은 높은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도는 낮고 습도는 높기 때문에

곰팡이가 번식하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동충하초에 감염된

개미를 처음 자리 잡은 나뭇잎에서 다른 환경으로 옮겨 놓자, 동충하초의

자실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포자가 형성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죠.

즉, 개미가 스스로 찾아가 죽음을 맞이한 곳은 동충하초가 번식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굳이 25cm라는 높이에 매달렸던 건

자실체에서 터져 나온 포자가 그 밑을

지나가는 동료 개미들에게 보다 쉽게 안착하기 위해서였죠. 이렇게

새로운 숙주에 안착한 동충하초의

포자는 개미의 외골격을 분해하는 효소를 분비해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다시금 생활사를 이어나갑니다. 정말 정교함 그 자체 아닌가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동충하초를 가리켜 일명

좀비 개미 곰팡이라고 불렀는데, 아마

다들 한 번쯤 영상이나 기사를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설명을 들었겠죠.

곰팡이가 개미의 뇌를 조종한다라고

말이죠. 처음에 이 현상을 목격한 과학자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곰팡이의

균사체가 개미 뇌를 침투해 장악하고

특정 물질을 분비해 행동을 조종한다는

가설이 대세를 이뤘었죠. 그러던

2017년 휴스 박사는 기존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 발견을 합니다. 그의 논문에는 이

곰팡이는 개미의 몸 도처에 존재하지만

뇌로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죠. 아니,

그럼 뇌로 침투해 조종하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개미를 좀비로 만든 걸까요?

휴스 박사는 곰팡이에 의해 점령당한

건 개미의 뇌가 아니라 근육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감염된

개미의 뇌에서 이 동충하초의 균사체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죠. 그러면서 뇌를 제외한 모든 기관에 이

균사체가 퍼져 있었고, 심지어 다리 근육에도 퍼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여기 보이는 빨간색이 개미의 근섬유인데, 동충하초의 균사체는

근육 조직을 침범해 근섬유를 둘러싸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죠. 그리고 이

근섬유의 수축과 이완 등을 제어하며

개미의 행동을 조종했던 겁니다. 즉,

근육만 곰팡이에 의해 조종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죠.  중간에 비유하자면,

정신은 깨어 있는데 몸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건데요, 정말 섬뜩하지 않나요? 이 발견은 그간 알려진

것과 달리 기생 생물이 숙주에 중추신경계에 침투하지 않고도 숙주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다는 면에서 꽤 큰 반향을 불러왔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대개의 포식 동충하초들은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박쥐나방 애벌레의

기생하는 종을 봐도 애벌레를 감염시킨 후 별다른 행동 조종 없이

적당한 때가 되면 자실체가 자라나 포자를 퍼뜨리는 식이죠. 딱정벌레를

감염시키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숙주인

개미를 굳이 25cm 높이의 나뭇잎까지 이동시킬 게 아니라 그냥

개미 집단 내에 가만히 두면 더 많은

개체들을 감염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휴스 박사는 개미

집단은 동료 개미가 질병에 감염될

경우 해당 개미를 죽이거나 내쫓아 격리시키는 이른바 사회적 면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포식 동충하초는 개미를 숙주로 삼게

된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숙주를 집단으로부터 강제로 떨어뜨려 놓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설명했죠. 그렇다면 도대체 개미를 좀비로 만드는

곰팡이는 언제부터 진화해 온 걸까요?

사진 한번 보실까요? 약 4,800만 년 전 숲 속 식물의

잎 화석인데요. 잎맥을 자세히 보면

규칙적인 자국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확대해 보면 이런 자국이 나타나는데요,

어디서 본 것 같죠? 그렇습니다. 이는 동충하초에 감염된

개미가 나뭇잎에 거꾸로 매달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잎맥을 꽉 물어서

동충하초는 개미의 뇌가 아닌, OO을 지배합니다!｜좀비개미 곰팡이의 숨겨진 비밀과 진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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