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대개는 글자로 빼곡히 적힌 고문서나 고서를

연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문자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수많은

방법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기록해 왔습니다. 이 분야에서 한국은 기록의

민족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기록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독일 구텐베르크보다 70년 앞선

직지심체요절, 방대한 팔만대장경, 누구나 글을 기록할 수 있게 만든 한글 같은 잘 알려진 것만

이미 선사 시대부터 우리 한반도 조상들은 돌에, 바위에, 땅에 그림을 그리는 등 치열할

정도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왔는데,

지금도 그 흔적은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기록은

울산의 한 댐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오늘은

울산으로 가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디스 멘탈입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주민들의

제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 12월 24일, 이제 갓 서른이 된

미술사학자 문명대 교수는 원효대사의 자취가 서려 있다는 반고 절터를

찾기 위해 울산을 찾았다가 주민들로부터 흥미로운 제보를 받습니다.

주민들은 절벽에 이상한 그림들이 보이는데, 이끼가 끼고 흙탕물이 흘러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다면서 꼭

가보라고 제안했는데요. 당연히 마해

석불을 찾으러 현장을 찾았는데,

절벽에 새겨진 것은 마해 석불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글자와 그림, 기하학적 무늬들이 새겨진 암각화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암각화입니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이듬해 3월과 11월 추가 조사를 위해 방문할 때마다 옆 동네

울주군 주민들도 삼삼오오 구경을 나왔는데, 그들끼리 늘 하던 말이

우연히 문 교수의 귀에 들어왔죠. "우리

동네 절벽에는 호랑이 그림이 새겨져

있다"는 것. 너무 이상한 소리였지만, 속는 셈 치고 한번 가보자 마음

먹고는 크리스마스 당일 배를 빌려 호랑이 그림이 새겨졌다는

절벽으로 향했죠. 배 위에서 바라본

절벽의 그림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반질반질한 암벽에는 춤추는 무당과

거북이 세 마리, 고래 머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절벽이 물에 잠겨

일부만 보였지만 그는 직감했습니다. 이건 대단한 유적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눈치 채셨겠지만, 국보 제

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매번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조금 더 다루기로 하고, 반구대 암각화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문 교수가 배를 타고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 그리고 이후 3년 동안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곳이 물에 잠기기 때문입니다. 1965년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대곡천에 위치한 반구대는 1년 중 5개월 동안 물에

잠겨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려면 물이 빠진 후에야

가능했죠. 그러나 1974년 오랜 가뭄으로 댐의 바닥이 보일 때쯤

제대로 된 실측 조사가 시작되었는데요. 조사팀은 안벽 표면에 점토를 일일이

붙이며 조사를 진행했고, 높이 2.5m,

너비 9m에 이르는 거대한 안벽에서 고래,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과 고래를 잡는 선원들의 모습 등

약 300여 점의 문양을 확인했습니다. 1984년 동국대학교가 발간한 연구지

『반구대 울주 안벽 조각』에 그려진

실측도가 담겼는데, 그 정교함과

규모가 상당합니다. 너비 약 10m, 높이 약 3m 안벽에 그림을 새기는

것이야 별 특별할 것도 없겠으나,

반구대에 그려진 그림들은 늦어도 청동기 시대, 이르면 신석기 시대

울산에 살던 조상들이 새겼기 때문에

특별한 가치를 지닙니다. 제대로 된 문명이 형성되기도 전에 우리 조상들은

안벽에 그림을 그려 자신들의 존재를

남겼으니까요. 이렇게 벽화에 새겨진

선사 시대 생활상은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보물입니다. 사실 암각화는

그 절벽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어 탄소

연대 측정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

시기를 추정하게 되는데,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제작

시기가 몇 천 년 전인지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 암면에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 거북이,

물개 같은 해양생물과 함께 호랑이,

사슴, 멧돼지, 소, 토끼 등이 묘사되어

있으며, 몇몇 동물은 내장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배와 작살, 그물, 창을 든 사냥꾼, 춤추는 주술사

등 총 300점이 넘는 그림이 절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당시의 사냥 기술과 의식, 사상, 사회, 경제상을 엿볼 수 있어 지금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암각화의 진짜 가치는 고래

그림에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울산은 한때 우리나라 포경업 중심지였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그림 속에서 확인된 고래만 북방긴수염고래, 흑등고래, 돌쇠고래,

향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상괭이 등 최소 일곱 종입니다. 암각화 전체에 무려 고래 신 세 마리가 새겨져 있죠.

이로써 당시 고래 집단의 종류, 행태,

습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죠. 또한 작살로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

북구를 이용해 죽은 고래를 인양하는 모습, 포획한 고래를 해체하는 장면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림의

가장 윗부분에는 한 남성이 성기를 노출한 채 무릎을 굽히고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요. 이는 샤먼이 감정이 고조된

접신 상태에서 주술을 행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의 등 뒤에는 거북이 세

마리와 수많은 고래가 그를 향해 몰려

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좌측 하단부에는

사지를 활짝 편 채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인물은 과장된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여성의 상징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고래의 영혼을 위로하여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을

주관하는 샤먼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은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

1995년 6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문명대 교수는 여러

시기에 걸쳐 한 곳에 집중적으로 겹쳐

그려진 암각화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어렵다며, 세계 미술사에도 구석기

시대에는 라스코 동굴벽화, 신석기

시대에는 한국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고 쓰일 정도로 손꼽히는 유적이라고 강조합니다. 한편, 반구대

암각화가 학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인류가

"어? 이게 뭐지?" 바닥 완전 드러난 울산의 한 저수지, 그 아래서 7천년전 비밀 쏟아졌다 / 디씨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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